서태지 09년 전국투어 뫼비우스 상영을 4번을 봤다. 4번이나 봤어?!, 4번 밖에 안봤어?! 도 아니고 그냥 난 4번을 본거다. 지금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이 분명 내가 간 날의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난 왜 기억이 안날까 라는 매일 하는 질문도 했고,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도 했고, 그날, 그때 느꼈던 행복하면서도 처절했던 감정들도 되살려보고, 팬 혹은 매니아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기도하고 여느때처럼, 그냥 그렇게 온갖 잡념과 감정들이 뒤섞인 채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4번을 본거다.
1.
팬질에 대해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하는건 별로 즐겁지는 않다. 그치만 자주 생각은 한다. 어찌되었든 그냥 뮤지션 하나를 좋아하는 것 뿐인데 대체 왜 서태지 매니아 답게라는 말에 속박되어 살아가는건지 알 수는 없지만, 뭐 어쩌겠는가 서태지란 사람이 '너흰 또 다른 서태지야~' 하고 기쁜 얼굴을 하며 매 공연때마다 외치는데, 까짓것 저런 말 속박되서 살아주지하고 체념하고 만다. 물론 마음은 가득하지만 안따라주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래도 저런게 하나 쯤은 있으니까 안그래도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비오는날 비 맞으며 뛰댕기는 미친년 같은 정신상태를 한번 쯤은 잡아 주지 않나 한다.
2.
팬질에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몇몇 있다. 2008년 ETP때, 아마도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동의할텐데, 태지가 나오기 전 싱글1의 자켓이 그려진 현수막이 올라가면서 무대가 가려지자, 잠실 야구장, 그 곳의 기운이 확!하고 바뀌는데(말로 표현이 안된다), 정말 온 몸에 전율이 왔다. 기(氣)라는게 진짜 있는거고, 정말 서태지 매니아/팬들 징글징글하구나 라는걸 또 깨달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 태지 공연을 가면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정말 관객들의 공연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하다. 미친듯이 몰입하다가 물이라도 마실려고 잠시 한눈을 팔면 정말 이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딱 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는게 정말 대단하다. 그 많은 시선을 휘어잡는 태지도 대단하고 몰입하고 있는 관중들도 대단하다. 뫼비우스를 보면서도 그랬다. "아.. 정말 몰입도 대박이다" 가끔 가다 관객을 잡아주는 장면을 보면 뭐 서태지 개인에 대한 몰입이 아니더라도 공연 자체에 대한 몰입이 끝내준다. 다들 표정은 비슷비슷하고, 다들 자기 삘에 취해서 공연을 즐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물론 끝자락에 우는 얼굴들도 많지만.
3.
이태현 회장님께서 지금 이곳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일거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공연장에 와있는 팬들을 봐도 느껴진다. 정말 태지 공연장에선 행복하다. 특히 8집 공연은 그게 더 배에 달했던것 같다. 이미 태지의 팬싸이트 감시 및 섭렵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공연장에서도 팬싸이트에서 나온 얘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해주고, 그래서 같은걸 보고 웃고 떠들고 그러는구나 하는 행복감이 절정에 달았었다. 근데 이 덕분에 폐쇄적이 되어간다는, 혹은 폐쇄적이라는 말을 많이 했고, 들었다. '그들만의 축제'라는 말도 많이 따라다녔는데, 아직도 일부 동의하는 바이긴 하나 뫼비우스를 보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축제는 온전히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것이 맞다. 축제라는게 원래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그들의 유입되어야 하는게 기본 바탕 아니냐? 한다면, 태지 공연은 문닫아 걸고 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뭐 공연 올라면 퀴즈를 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뭐 불사의 약을 구해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돈 주고 표사서 들어오면 된다. 물론 표 사는게 쵸큼 힘들긴 하지만. 축제에 들어오지도 않고 멀리서 축제나 바라보면서 그들만의 축제라고 왜 저게 내것이 아니냐고 찡찡 거리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다만 표사서 축제에 들어왔는데,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더라 라고 이야기 하면서 폐쇄적이라고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선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즐기고 싶다면 사전에 공부를 해오는게 맞는거지만 꼭 그렇게 해야할 필요는 없다. 뭐 어찌 되었든 공연의 기본인 음악은 우리끼리 속닥 거리며 낄낄거리는게 아니니까, 멘트에서 이질감을 느낀다면 어쩔 수 없다 싶다.
4.
행복이니 축제니 하는건 팬들뿐만 아니라 무대에 서있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무대를 만든 스탭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것 같다. 음악이 좋아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일거고, 자기가 하는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걸 보는것도 또 다른 행복일거고, 그런 의미에서 무대는 그사람들에게 최고의 장소일거다. 원장님이 하루종일 드럼만 쳐보고 싶었어요 (미정씨가 그랬나?) 라는 말처럼 어찌보면 생계따위 걱정안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멤버들에게도 태지의 활동은 축제였을 거고, 팬들이야 두말하면 입아프고, 스탭들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겠지만 축제였을거다.
5.
8집 공연 때 마다 내가 똑같이 반응한 포인트가 있으니, 바로 그로울링이었다. 하, 뭐랄까 그 전의 그로울링은 음.. 교과서적이랄까, 잘 다듬어진것 같았다면 8집때 그로울링은.. 거친 그로울링의 표본이었다. 게다가 정말 뭐가 잔뜩 쌓인걸 푸는것 같아서, 한번은 음반 작업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하는 지구 백바퀴는 돌고도 남을 오지랖도 떨었었다. 하긴 이제는 막 신나서 보다가도 문뜩 빠진 얼굴살을 보면서 건강 걱정을 하는 잔소리쟁이+물가에 애 내놓은 엄마 같은 마음도 한가득이니. FM비지니스, Feel the Soul~ 에서의 그로울링은.... "옵화" 하며 두손을 모아 눈을 ♡_♡ 요렇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사람 하나 죽일것 같은 표정까지도. 역시 가수는 연기가 되야해ㅋㅋㅋ. 그래 신나는 노래는 행복해 미칠것 같은 표정으로 부르고, 쌩~한 노래는 쌩~한 표정으로 부르고, 아련한 노래는 아련한 표정으로 부르고 가수는 연기가 되야 한다니까.
6.
매 공연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노래가 있다. 태지의 18번인 셈인데, Take5는 어째 이제는 의도가 비행기를 날리고, 비행기를 잡겠다는걸로 불순하게 바뀐것 같지만,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곡이고(안하면 그 수 많은 노란 비행기는 날리지 못하고..). 슬픈 아픔은 셋리스트에 장기집권중인 곡인데. 대체 태지에게 슬픈아픔이 갖는 의미가 뭘까 너무 궁금하다. 처음에는 슬픈 아픔이라는 제목이 너무 예뻐서 좋아했고, 나중에는 곡 분위기와 가사가 슬프지만 예뻐서 좋아했고, 지금은 그런 예쁘디 예쁜 노래를 담담하고 맹맹한 목소리로 부르는 태지가 좋아서 좋아하는데, 태지에게 슬픈 아픔은 뭘까. 궁금해졌다. 쫄핑때였나 아마도 처음이었던 공식적 질문 타임처럼, 나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코마 네이쳐랑 슬픈 아픔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아마도 실제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버버버 거리고 말겠지. 흑. 나란 뇨자 그런 뇨자. (기운을 내봐~♬)
7.
뫼비우스 후기 중에 그런 후기가 많았다. 서태지랑 팬들이랑 되게 애절(?)해 보인다고. 공연 중간 중간이나 막바지에 꼭 외치는 사랑해라는 말은 솔직히 난 아직도 낯뜨거워서 잘 못하겠다. 물론 그게 남녀간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뭐랄까 한 존재에 대한 신뢰, 지지, 애정, 뭐 그런 복잡한 감정을 아우르는 거겠지만 공연장에서도 낯뜨거워 잘 못 외치겠는데, 또 막상 외치는걸 듣고 있으면 부끄부끄하다. 감정은 표현해야 전달되는거야 라는거 알고는 있지만, 어쩌겠는가. 성격이 이모냥인걸. 아무튼 그런 복잡한 감정에, 은퇴와 은퇴보다 긴 공백기와 온 갖 사건들로 꽁꽁 뭉쳐진 사이이니 애절할 수 밖에 없다. 서태지는 자신에게 있어서 최후의 순수의 보루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고, Take앨범을 대하는 팬들의 태도 이런것만 봐도 매니아/팬들에게 있어서 태지가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공연이 끝나면 울 수 밖에 없을지도. 열라 담담함으로 무장했던 나도 앵콜 막날 공연이 다 끝나고 현수막을 접는데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물론 이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학생이니, 자식이니, 친구니, 제자니, 뭐 이런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그냥 한 존재로서 느끼는 행복감을 오랫동안 느낄 수 없겠지, 한 여름밤의 축제는 끝이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도 있고.... 언제 또 그렇게 바보같이 웃으면서 종이비행기를 접고 날리겠나. 태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며 그걸 업으로 삼고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그냥 살면서 태지 음악을 듣고, 좋아하고, 태지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한 삶이지 않나 싶다. 아무것도 아니길 꿈꾸던 자의식 과잉의 나에게 처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그저 존재 대 존재로서의 만남을 알게해준 사람이니까.(이것도 어쩜 자의식 과잉일지도 몰라~) 그래 이미 그냥 연예인을 좋아하고 한때의 추억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깊고 멀리 왔지.
8.
뫼비우스에서의 한장면을 뽑으라면 7집 이후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제킬도 접어두고, FM비지니스때 붉은기 있는 노란 조명이 딱 들어오면서 싸늘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태지만 잡히는 그 장면을 꼽겠다. 가사와 조명과 화면과 인물과 노래와 모든 것이 쿵짝쿵짝 잘 맞아 떨어진 최고의 장면! 지킬 때도 하얀 조명도 비슷하긴 하지만 그건 화면이 마음에 안든다.ㅋㅋㅋ
9.
모르는 사람인데도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그냥 공연장 옆 사람 모르는 사람이지만 웃고 있으면 나도 더 활짝 웃게 되고,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웃는거 보니까 기분 좋아지고, 다들 계속 같이 기분좋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이 기분이 좋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더 좋아지고, 나도 신나는데 저 사람도 신나하고, 뭐 그런거. 그래서 저 사람도, 옆에 사람들도 모두가 계속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미력하나마 하고 싶고, 할 거다.
나는 축제가 끝났는데, 왜 축제가 끝난 공터에 누워 풀을 뜯으며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나.. 느낌들을, 생각들을, 발견한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잡아서 내 손안에 두려고 발악하면서, 그 끝도 없고 답도 없어서 중구난방식으로 중얼거리는거에 불과한 것들을,
+) 아이들의 지배자, 위대한 현인 뽀로로 선생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지. "세상에서 노는게 제일 좋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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