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5 20:04

영국_세븐시스터즈 '하얀 절벽' 유럽




 Seven Sisters, 일곱개의 절벽을 왜 형제들도 아니고 자매들로 이름지은건지 모르겠다.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하얀 절벽, 계획을 세우면서 기대를 많이 했던 곳중 하나이고 그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고, 또 상상 혹은 예상 이상으로 다사다난 했다. 난 여기서 한 번 중상을 입을 뻔 했으며, 한 번 목숨을 잃을 뻔 했고, 멀쩡한 남정네 넷의 부끄러운 모습도 보았다.

 세븐시스터즈에 가기 위해서는 기점이 두 곳이 있는데, 나는 영국 사람들의 휴양지로 꼽히는 브라이튼(Brighton)을 경유해서 갔다. 브라이튼 까지 가는 것도 삽질의 연속이었는데, 바보 같이 펀페어에 너무 중점을 뒀더니 그만 헷갈리고 버스를 같은날 다른곳으로 떠나는 두 편을 예약한거였다. 결국 빅토리아 역에서 기차역으로 뛰어가 돈은 돈대로 더 내고 기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흑. 그래 시작이 좋지 않았다. 

 브라이턴 역에서 나와 Brighton & Hover Bus 12번 혹은 12A번을 타기 위해 Sealife 센터 반대편까지 걸었다. 역에서 바닷가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본 브라이튼 시내는 휴양지 답게 예쁜 도시였다. 언덕 때문이었는지 샌프란시스코가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에 타서 원데이 패스를 끊으니 5파운드, 인터넷 예약을 하면 3파운드까지 할인해주는것 같았다. 잔돈이 없어 20파운드를 내밀었더니 아저씨가 잔돈이 없냐고 짜증내는데, 잔돈이 없는 난, 그냥 못알아 듣는 척했다. 아저씨가 짜증내면서 15파운드를 동전으로 거슬러 주는데 하하하^^;

 50여분을 달리니 7sisters park에 도착, 안내소에 들어가 어떻게 가느냐, 어디서가 가장 잘 보이느냐고 물으니 반대편 언덕이 잘 보이고, 여긴 어떻게 가고, 여러가지 코스가 있다며, 체력에 자신 있으면 이렇게 올라가고, 아니면 이렇게 올라가고, 아니면 요렇게 바닷가에 가고 선택은 네 맘! 이라는 식의 설명에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군요 하며 껄껄 웃으니, 아저씨가 그래도 운이 좋다며 지금 썰물 시간이나 절벽을 따라 걸어 볼 수 있을거라고 했다. 역시 명소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사시는 분들은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친절하다.

 바람이 불고 있는게 아니다. 정말 내가 갔을 땐 바람이라곤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거릴 정도의 산들바람 뿐이었다. 그것도 절벽에 올라가야지 그런 바람이 분다. 그냥 여기 있는 나무들은 죄다 저렇게 자란다.

 바람이 엄청 쎄기 때문에 추웠다던 친구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 긴팔을 입고 갔더니, 바람이라곤 산들바람 밖에 불지 않는 뜨거운 햇볕 아래, 아... 이번 여행 난 정말 날씨 운은 드럽게 없구나.. 하며 터덜터덜 걸었다. 개천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지나, 소들을 지나, 바람에 휘어져 꽃만 달아주면 광년이 헤어 뺨치는 나무들을 지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지나, 물이 맑아서 인지 날씨가 좋아서 파란하늘이 그대로 물에 비추는 것인지 아리송해하며 걸으니 바닷가에 다달았다. 새파란 하늘과 새파란 바닷물에 수평선은 없어보이고, 털썩 자갈밭에 주저 앉아 아 덥다 하며 고개를 돌리니, 왼편으로 하얀 절벽이 늘어서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새파란 바다와 새하얀 절벽, 장관 이었다. 


 모래밭도 아니고 자갈밭,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 휘청휘청 이리비틀 저리비틀 걸어 절벽에 손을 짚고 절벽을 올려다 보니 시각과 청각이 증발해 버리는 기분. 소름돋도록 새하얀 모습에 또 절벽 뒤로 펼쳐지는 새파란 하늘에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마저 빼앗겨서 일순간에 주변이 너무나 고요해졌다. 뭐 이런 감각이 다있나 하며 절벽을 향해 계속 걸었다. 처음 삐져 나온 절벽의 자락을 지나, 물이 빠져나가 이끼가 낀 미끄러운 돌들을 밟으며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걸었다. 그래 안내소 아저씨 말씀처럼 나는 행운아야! 하며 흥얼 거리며 만족감에 찾던 찰나, 혹시나 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이끼가 낀 돌들은 미끄러움 그 자체였고, 뙤약볕 자갈밭을 헤치며 걸어온 내 다리는 힘이 풀려 있었고, 결국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그나마 중심을 잘잡아 다행이지, 자칫 했으면 뒤로 넘어져 수많은 돌들에 머리 깨지고 난 행방불명되어 내 사체는 바다 어딘가에서 물고기밥이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힘이 풀려 절벽에 기대 앉았다. 시간이 가면서 해는 움직이고 그늘은 사라져가고 햇볓은 날 향해 다가오고... 이제 슬슬 자리를 옮겨야지 하고 있는데, 작은 돌들이 떨어진다. 이미 내 사체는 고래뱃속에 있다라는 상상까지 가버린 사고회로는 절벽이 무너지는건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문장을 떠올렸고 고개를 올려 위를 쳐다봤더니, 같이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유추해보니, 대략 덴마크 쪽 아이들이 절벽 위에서 "꺄하하하하하하" 하며 돌을 던지고 있었다. 아 그래요 제가 아이폰으로 노래 좀 크게 틀고 있었다고 이런 식으로 애들이 돌을 던져도 되는겁니까.. ㅠㅠ... 그 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던 돌을 그대로 맞았다면 난 중상을 입었을 것이야.... 죽진 않았을지라도


 목숨을 걸고 절벽을 기어 올라, 절벽 끝자락으로 걷다보니 뜻하지 않게 다큰 남자애들 넷이 나란히 노상방뇨 하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게됐다. 내가 이런 일들을 당하고 겪으려고 목숨을 걸고 온게 아닌데.... 허허허허.. 아무튼 절벽 끝자락에 서보니 하얀 절벽은 멀리 있는 부분만 보일 뿐이고 그냥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뿐이었다. 갈매기들이 절벽 끝자락을 따라 이리저리 날고 산들바람은 적당히 불어주고 천국이 따로 없구나~ 생명의 위협을 몇차례 느낀 다음이어서 천국이라는 기분이 더 컸나.

 세븐시스터즈의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반대편에 있는 절벽에 올라가야 한다. 점심을 호화찬란하게 먹어제끼고 그 지역 맥주도 바가지 써가며 입에 털어 넣고 반대편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곳도 바람이 만만치 않은지 나무들은 죄다 광년이 포스를 내뿜고 있었고, 소들은 한가롭게 풀이나 뜯고 있더라. 반대편 절벽에 오르니 세븐시스터즈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날이 좋아서 인가 새하얀 절벽이 파란 물에 반사되어, 저거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풍경이 맞나 싶더라. 비록 그 상황의 나는 무수히 많은 토끼똥과 토끼굴을 짓밟고 서있었을지라도. 


 한 2-3시간이면 충분히 보겠지 싶었던게, 오전 한 10시쯤에 도착해서는 다섯시 쯤 버스를 타고 돌아가니 거의 하루 종일 있었던 셈이다. 이렇다할 체험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 말도 안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발길이 안떨어 졌다. 다른 곳이라면 아쉽지만.. 이만.. 하고 총총 발걸음을 옮겼겠지만,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괜히 사진이나 한번 더 찍고, 또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앉아서 멍하니 보고나 있고. 아마도 영국 여행 막바지 단계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씨씨나, 포지타노나 뭐 이런곳의 해안 모습도 아름답지만, 여긴 정말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찍은 사진을 보니 그 느낌이 안살아서 사진을 찍은 내 손을 저주하고 있지만서도..


 아!!! 정말 저놈의 잡티!!!!!!! 내가 가기 전에 카메라 수리를 안한 내가 내가 바보지 천하의 몹쓸놈이지 

덧글

  • CATCHO 2010/08/27 17:52 #

    아~ 여행밸리 구경하다 보고 들어왔어요.~

    이렇게 보니 새로워서 ㅎㅎ

    사람이 그리 많이 자살한다고 하던,, 그 세븐시스터즈네요!
  • 고젤고젤 2010/08/27 20:11 #

    제가 갔을 땐 영국답지 않은 날씨여서 그랬지만
    우중충한 날씨였다면 분위기가 그럴싸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예쁜곳이었어요.
  • 런더니즘 2010/08/28 20:14 #

    언젠가 제가 꼭 가봐야 할 곳이네요~ 잘봤습니다 ㅎㅎ
  • 닉쿤여팬 2010/08/29 00:14 # 삭제

    볼리비아엔가 있다는 소금사막이 생각나 진짜 하얗네..
    난간이나 그런건 없었던거야?
  • 고젤고젤 2010/08/29 14:46 #

    응 난간 같은거 없더라고,
    그냥 저런 모양
    산책로? 하이킹하는 길은 안쪽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