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9 15:41

프로메테우스와 삽질 등 지껄임


괴테 -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잿빛 구름의 안개로 덮어라!

엉겅퀴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와 같이

떡갈나무나 산꼭대기에 덤벼 보아라!

그러나 나의 이 대지는

내게만 맡겨야 한다.

그대의 힘을 빌지 않고 세운 내 오두막

그리고 내 아궁이와

그 불을

그대는 시샘하고 있는 것이다.

 

신들이여 태양 아래서 너희들보다

가련한 존재는 없으리라

너희는 째째하게도

희생물로 바친 제물이나

기도의 한숨으로

너희 위엄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어린이나 거지 같은 인간이

어리석은 소원을 아뢰지 않으면

너희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어린 시절에

아무런 사리 판단을 못하였기에

태양을 향해 의혹의 눈을 던졌나니

거기에 나의 슬픔을 들어 줄

귀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위로하는

그런 마음이 있으려니 생각해서였다.

 

누가 거인족의 폭력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는가.

누가 죽음과 노예 상태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는가

그 일을 한 것은 성스럽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젊고 착하기만 했던 나는

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천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신들에게 감사했었다.

 

그대를 숭상하라 하는가, 왜 그런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의

괴로움을 가볍게 해 주었던 일이 있었던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고뇌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눈물을 씻어 준 일이 있었던가.

나를 한 인간으로 단련시켜 준 것은

전능한 '때'와

영원한 '운명'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바로 나의 주요 그대의 지배자이다.

 

아름다운 꿈의 이상이

완전히 열매 맺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인생을 증오하고

사막으로 도망치기라도 해야 한다고

그대는 망상이라도 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서

내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만든다.

나를 닮은 종족을 만드는 것이다.

괴로워하고 울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그대 따위는 숭상하지 않는

나와 같은 인간을 만든다.




 프로메테우스에 대하여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전능한 신을 속인 인간을 사랑한 존재 쯤으로 그려졌던 프로메테우스는 그저 어느 신화에나 있을 법한 이단아 쯤 되보였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전능한 신조차 어찌 할 수 없는 존재. 그 능력 때문에 어떤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 말이다. 운명론에 반항하는 존재, 그치만 프로메테우스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반운명론적 존재라고 단언하기도 힘들것 같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파고들 깊이가 부족하다. 괴테의 시를 가장 그럴싸? 하게 번역된 것을 찾다가 해석들을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혁명가' 이미지를 프로메테우스에게 입히고 있었다. 


 구글 이미지에 프로메테우스를 소재로 한 그림이 다 나왔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역시 여러 그림들을 둘러봐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일전에도 올린적 있는 Theodoor Rombouts의 프로메테우스이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마도 불을 훔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겠지만,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그림 같다. 내 방식대로의 프로메테우스와 가장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보는거지만 말이다. 뭐 그림이 그려진 시기나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 직강(?!)은 모아이-줄리엣-버뮤다-틱탁-휴먼드림-코마-레플리카-아침의눈 의 순이었다. 서버 폭주로 실시간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아 다소 의욕은 없지만 다 풀어진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노래 가사는 둘째치고, 뮤비의 내용은 그 순간 혹은 시대의 모습들의 내용에 가깝고 저자 직강 스토리는 개인의 일지로 그 시간, 시대를 본 일종의 야사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순간 뮤비의 내용과 전체골조가 교차하는 부분들이 있었으나, 정말 음모론의 외양처럼 '정사'는 야사처럼 야사는 '정사'처럼 이란 느낌이었다. 

 한창 8집 스토리는 무엇인가 하고 한참 빠져 있을 무렵, 버뮤다는 대체 이 이야기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먼드림까지는 껴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의 눈은 아예 열외였다. 저자 직강 이후 적어도 아침의 눈에서 받았던 '정화', '(생동하기 직전의)고요', 라는 이미지는 맞아 떨어진것 같다. (여기서 약간의 흐뭇함ㅋㅋ) 


 인용된 프로메테우스 시를 보면서 악! 하고 소리를 질렀었다. 번쩍하고 사라지는 구절을 잡아서 보고 그게 괴테의 시라는걸 알아낸 사람의 능력에 대한 비명이기도 했지만, 모든 근원적 해결책은 '너 자신'이라는 얘기와 약간은 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그 자리를 기술이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일종의 기술결정론과 맞닿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윤리적 사고의 부재보다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핸드를 꺾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8집 스토리에 반복되는 이야기인 '존재의 복제로 인한 자아 상실'말이다. 휴먼드림에서처럼 부족한 어떤것에 대한 갈망, 욕망이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정보를 공유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불특정 다수와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되면서 고유한 존재에 대한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무수히 복제된 이미지 속에서 서 있는 그런 모호함 말이다. 간혹은 두렵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원작, 원본이 가진 아우라는 있다 하더라도 사실 생존 그 자체라던가 하루하루에 있어서 아우라, 고유함같은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부르고 등 따수워야 떠오르는게 아우라라고들 하니 말이다.

 종을 울리다는 레플리카 부분의 글을 보면서 존던의 시가 생각났다. 그 종이 이 종일리는 없겠지만, 문뜩 생각이 났다. 개인 모두 전체의 한 부분, 공존, 연결 그런것들일까하고 궁금해했던 시. 공존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기 위해 종을 울린다는 레플리카의 부분은 좀 가슴이 아팠다.
 예전에 존 던의 이 시는 장례와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이어져 남아 있는 것이 김소월의 초혼이었다. 고복의식 처럼 이리로 돌아오라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떠났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했던가, 어느 누군가를 위한다는 점은 동일하지 않나..
 
 미스테리 글을 읽다가였는지 무슨 만화였었는지, 예전엔 집단의식이 있었다는 이야길 본 적이 있다. 집단의식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 지식같은 것들 말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중앙컴퓨터 하드에 개인의 지식이나 사고들이 저장되고 언제나 접속해서 열람할 수 있는 뭐 그런 시스템. 어릴적 열려 있던 대천문, 소천문이라든가, 100마리 원숭이 이론이라든가 그런걸 이유로 들었던거 같다. 원하는 때 접속할 수 있고 원하는 때 접속을 끊을 수 있는 편리하다면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업데이트 되는 정보가 내 의지 없이 흘러들어 온다면 내가 경험한 기억과 흘러들어온 정보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럼 개인은 정말 개인으로 존재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복제와 크게 다를바 없는 이야기겠지.

 줄리엣의 언덕은 에덴의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낙원이었던 언덕 에덴. 사과 .. 뭐.. 어는 신화든 민담이든 태초엔 남녀의 평화로운 공존과 사랑 애정만이 존재 했었으니 크게 빗나간건 아니것 같지만. 버뮤다는 혼돈 그 자체를 의미하는데 왜 뮤비에서는 성이야기를 다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 혼돈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죽어도 8집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내 의문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우리 시간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뫼비우스 처럼 반복된다는 점이겠지. 그런 의미로다가 8집 한번 더 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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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본 제로는 절규하며 부르는 이 밤이 깊어가지만이 잊혀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