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잿빛 구름의 안개로 덮어라!
엉겅퀴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와 같이
떡갈나무나 산꼭대기에 덤벼 보아라!
그러나 나의 이 대지는
내게만 맡겨야 한다.
그대의 힘을 빌지 않고 세운 내 오두막
그리고 내 아궁이와
그 불을
그대는 시샘하고 있는 것이다.
신들이여 태양 아래서 너희들보다
가련한 존재는 없으리라
너희는 째째하게도
희생물로 바친 제물이나
기도의 한숨으로
너희 위엄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어린이나 거지 같은 인간이
어리석은 소원을 아뢰지 않으면
너희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어린 시절에
아무런 사리 판단을 못하였기에
태양을 향해 의혹의 눈을 던졌나니
거기에 나의 슬픔을 들어 줄
귀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위로하는
그런 마음이 있으려니 생각해서였다.
누가 거인족의 폭력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는가.
누가 죽음과 노예 상태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는가
그 일을 한 것은 성스럽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젊고 착하기만 했던 나는
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천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신들에게 감사했었다.
그대를 숭상하라 하는가, 왜 그런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의
괴로움을 가볍게 해 주었던 일이 있었던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고뇌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눈물을 씻어 준 일이 있었던가.
나를 한 인간으로 단련시켜 준 것은
전능한 '때'와
영원한 '운명'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바로 나의 주요 그대의 지배자이다.
아름다운 꿈의 이상이
완전히 열매 맺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인생을 증오하고
사막으로 도망치기라도 해야 한다고
그대는 망상이라도 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서
내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만든다.
나를 닮은 종족을 만드는 것이다.
괴로워하고 울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그대 따위는 숭상하지 않는
나와 같은 인간을 만든다.
프로메테우스에 대하여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전능한 신을 속인 인간을 사랑한 존재 쯤으로 그려졌던 프로메테우스는 그저 어느 신화에나 있을 법한 이단아 쯤 되보였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전능한 신조차 어찌 할 수 없는 존재. 그 능력 때문에 어떤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 말이다. 운명론에 반항하는 존재, 그치만 프로메테우스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반운명론적 존재라고 단언하기도 힘들것 같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파고들 깊이가 부족하다. 괴테의 시를 가장 그럴싸? 하게 번역된 것을 찾다가 해석들을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혁명가' 이미지를 프로메테우스에게 입히고 있었다.
구글 이미지에 프로메테우스를 소재로 한 그림이 다 나왔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역시 여러 그림들을 둘러봐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일전에도 올린적 있는 Theodoor Rombouts의 프로메테우스이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마도 불을 훔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겠지만,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그림 같다. 내 방식대로의 프로메테우스와 가장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보는거지만 말이다. 뭐 그림이 그려진 시기나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 직강(?!)은 모아이-줄리엣-버뮤다-틱탁-휴먼드림-코마-레플리카-아침의눈 의 순이었다. 서버 폭주로 실시간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아 다소 의욕은 없지만 다 풀어진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노래 가사는 둘째치고, 뮤비의 내용은 그 순간 혹은 시대의 모습들의 내용에 가깝고 저자 직강 스토리는 개인의 일지로 그 시간, 시대를 본 일종의 야사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순간 뮤비의 내용과 전체골조가 교차하는 부분들이 있었으나, 정말 음모론의 외양처럼 '정사'는 야사처럼 야사는 '정사'처럼 이란 느낌이었다.
한창 8집 스토리는 무엇인가 하고 한참 빠져 있을 무렵, 버뮤다는 대체 이 이야기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먼드림까지는 껴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의 눈은 아예 열외였다. 저자 직강 이후 적어도 아침의 눈에서 받았던 '정화', '(생동하기 직전의)고요', 라는 이미지는 맞아 떨어진것 같다. (여기서 약간의 흐뭇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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